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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C&DMC/글

[버질단테] Those TWO Nephilims Are (2/3)






​* selena gomez - wolves

Those Two Nephilims Are (2/3)

: Savior? or Destroyer?












 그의 심장은 부서졌다.
 축축하게 젖은 옷이 걸리적거렸다. 움직일 때마다 비린 피냄새가 올라왔다. 괴물같은 네피림의 치유력은 심장을 뚫어버린 상처까지도 치유했지만, 그건 외적인 부분 뿐이었다. 버질은 천천히 제가 선택한 세계를 거닐었다. 무릎 꿇은 악마들은 그들의 새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기꺼이 림보와 합쳐진 저들의 세계를 헤집으러 갔다. 조용하고, 침착하게 세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버질은 스스로가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원망? 그건 버질이 택할 것이 아니었다. 그건 차라리 증오에 가까웠다. 마치 더 이상 마주하지 않을 것처럼 보는 얼굴에, 더없이 차갑게 말을 뱉어내던 제 유일한 형제를 생각하며 버질은 이를 부득 갈았다. 너는 인간도, 악마도, 그렇다고 천사도 아니야. 우린 어느 곳에도 속했던 적이 없어. 우리에겐 항상 서로 뿐이었어. 왜 너는 늘 그래왔던 일을 부정하려고 해. 버질이 말하고자 했던 모든 생각들은 모두 그 표정에 무너졌다. 똑바로 저를 바라보는 얼굴을 보며, 그 눈에 담겨진 원망을 보며, 버질은 어떠한 말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이 마치 책망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너는 끝까지 나와는 반대로 달려 나가지, 항상 상처를 내는건 너였어. 마음대로 증오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는 제 형제를 마침내 심장에서 떨어뜨리려 하면, 그 심장을 점령한 것조차 자신이 아니었다. 버질은 그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멀어지는 그 순간. 단테는 버질을 원망하고 있었다. 수만 갈래로 나뉘어진 감정의 조각들 중에서 버질이 끄집어 낼 수 있는 건 실망뿐이었다. 내가 왜 그 길을 선택하려는지 한 번은 물어볼 수 있었어. 네가 나를 책망하기 이전에, 내가 네게 실망하기 이전에, 너는 나에게 진심을 물어볼 수 있었어. 하지만 원망은 늘 단테의 것이었고, 분노도 늘 단테의 것이었다.

 버질, 너는 형이니까, 단테를 잘 챙겨주어야 해. 그 녀석이 아무리 너를 이기려고 해도, 너는 그에게 져주렴. 언젠가는 단테도 깨달을 거란다. 네가 그를 사랑한다는 걸. 잠든 단테를 품에 안고, 상냥하고 다정한 그 목소리로 에바는 자신의 아들에게 말했다. 그 안에 깃든 온전한 애정. 사랑을 가득 담고 단테를 내려보는 그 눈이 자신에게도 담겨 있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그 애정이 넘치는 눈을 닮고 싶어서, 버질은 단테를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렸던 그 때의 환영을 보며 버질은 숨을 죽이고 눈을 감았다. 공평히 사랑했다는 어머니의 말은 어디도 믿을 것이 없었다. 내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가르친 당신은, 어째서 그에게 사랑을 받는 방법만 가르쳐 주셨습니까. 과격한 체념에 빠진 버질이 원망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였다. 세상에 그를 데려오고, 사랑을 가르친 장본인. 결국 관계의 파멸에 심장이 부서진 사람은 버질이었다. 비참한 과거에 남겨진 사람은 그였다. 그 끔찍한 자신의 모습을 단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버질은 그에게 실망 외에 그 어느 것도 내비칠 수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무엇도 아니게 된 하찮은 애정. 보잘 것 없는 생각에 무너져 있는 것보다는, 그를 증오하는 것이 더 빨랐다. 그래서 버질은 수천 번,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이, 부서진 심장의 모든 조각에 여전히 담겨 있는 그를 죽였다. 아무리 쳐내도 사라지지 않을 감정을 어떻게 해야 지울 수 있는가. 버질은 도를 넘어선 증오의 언저리에서, 제 손으로 심장을 으깨고자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감정을 처참하게 자리잡은 증오 아래에 감춰 숨겼다.

 버질은 완전히 아문 심장부근에 제 손을 얹었다. 그 안에는 사라지지 않을 흉터가 있었다. 악마들이 경배하는 영원한 생명과 힘, 저들보다 월등한 존재에 대해 가졌던 질낮은 이기심과 질투. 결국 천사와 악마는 다를 것이 없었다. 저들보다 뛰어난 네피림을 시기하여 사냥을 해왔던 그들의 위에 군림하게 된 버질은 이제 그들 스스로를 사냥하길 바랐다. 때때로 그가 생각하는 천사는 모두 단테의 모습을 했다. 눈부시게 흰 날개를 사방으로 뻗치며 버질을 비웃었다. 지금 날 따라오는 거야? 성경에서 흔히 나오는 크고 하얀 날개를 짊어지며 단테는 어릴 때의 장난처럼 그를 뒤돌아보며 말을 걸었고, 버질은 그 날개를 부러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네가, 나 때문에 상처를 입는게 두려웠어. 언제든 대답으로 튀어나올 수 있던 그 말을, 당연하게도 단테는 묻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소년은 스스로 쌓아올린 벽에서 벗어나는 법없이 그대로 자랐다. 그 벽을 두른 가시에 찔리는 걸 바라기만 하는 것처럼,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내뱉은 채,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이에겐 조소만 내려주었다. 이제 나는 네가 나 때문에 아팠으면 해. 네가 지탱하는 모든 날개가 망가져서, 내 손에 떨어졌으면 해. 버질은 은색에 가까운 마계의 태양 아래에 서서, 헛된 생각을 했다. 단테는 결코 누군가를 잡는 법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버질은 마계를 택한 첫 날의 그 때처럼 꿈을 꾸었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심장이 여전히 곪고 썩은 채 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피가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가슴을 한 손으로 누른 채 야마토를 제 생명줄처럼 쥐고 있는 버질의 앞에는 절대 밝아지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어둠이 있었다. 버질이 망연하게 정면을 바라보면, 그 앞에는 어느샌가 빛처럼 환한 단테가 나타나 그를 돌아보며 조롱했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따라잡을 수는 없어. 그가 비웃음과 함께 내뱉는 말에 증오가 아닌 다른 감정으로 찢겨지는 생각을 무시하며 달리면, 단테는 거짓말처럼 그의 손에 잡혔다. 마치 저 멀리 떨어진 적도 없는 것처럼 버질의 손에 잡힌 그는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큰 날개를 양 옆으로 펼치며 웃었다. 피가 얼룩진 손으로 그 목을 잡아채어 쥐면 그는 웃는 얼굴 그대로 버질에게 말을 걸었다. 웅웅거리며 또렷하지 않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버질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몇 마디 되지 않았다.

 ‘너는, 내게, 중요하지 않아.’

 그의 손에 죽음을 맞는 천사는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단테의 모습을 택한 천사는 그 때의 눈빛처럼, 시리게 차가운 손을 천천히 그의 가슴팍에 올렸다. 서서히 손가락을 상처에 비집어 넣으며, 고통스럽게 표정이 일그러지는 버질과 제 눈을 맞추고 웃었다. 그 미소는 버질이 야마토로 그를 찌를 때에도 이어졌다. 극렬하게 타오르는 증오를 모두 하얗게 얼려버린 천사는 얌전히 그의 시선을 피해 눈을 감고, 종국에는 모래처럼 부스러져 모습을 감추었다.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의 손에 쥐여졌던 심장만이 시린 그대로 남았다. 그렇게 그를 죽이고 죽여도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사랑했어.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에, 대답은 지금까지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버질은 현실세계에 비치는 림보를 막지 않았다. 오합지졸같은 악마를 통치하던 왕이 사라지자마자 완전히 무법지대로 변한 마계는 제 멋대로 풀린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었다. 새로운 군주, 반쪽짜리 악마의 힘에 무릎을 꿇은 악마들은 드높여 그를 숭배했다. 버질은 그들에게 림보의 길을 열어 주었고, 현실의 길을 열어 주었다. 활짝 열린 지옥의 틈에서, 악마들은 세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버질은 그들에게 단 한가지 금기만 내렸다. 단테는 건드리지 말 것. 새로운 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악마들이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안달을 냈다. 영리한 악마들은 단테의 근처에 다가가지도 않았으며, 그보다 더 영리한 악마들은 단테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것을 죽였다. 버질은 나서지 않았다. 완전히 심장이 아물어질 때까지, 그를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박살난 심장과 부서진 심장, 그 무엇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버질은 차라리 증오를 택했다. 차갑게 얼어붙은 증오 아래에 모든 것을 감추며, 버질은 단테에게 다시 한 번 닿을 날을 열망했다. 영원히 해소되지 못할 것만 같은 그 갈증에 허덕였다.

 그 때 버질은 캣을 보았다. 마계의 은빛 햇살 아래에 펼쳐진 림보의 단면. 무엇이든 살육하며 날뛰는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인간이 먼길을 돌고 돌아 한 때 그녀가 속해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솟구치는 증오가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그녀에게로 향했으나, 곧 버질은 그녀의 곁에 제 형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버질은 그 단면을 향해 가까이 다가섰고, 그녀를 놓친 악마가 길길이 날뛰며 그녀를 뒤쫓는 모습이 비추어졌다. 버질은 천천히 야마토를 그 틈을 찢어냈다. 갑자기 생겨난 마계의 틈에 악마는 빨려 들어가듯 차원을 넘었다. 자신을 소환해낸 왕의 발 아래에 몸을 숙이며 악마는 제 왕의 눈치를 살폈다. 버질은 그를 내려보며, 그가 입 놀리기를 좋아하는 벨리알같은 족속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림보의 단면을 통해 여전히 도망치는 캣의 뒷모습을 흘깃 바라본 버질이 다시 악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악마는 그가 충성하는 왕을 위해 입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버질은 증오 아래 꿈틀대는 감정을 무시하며 악마에게 평이한 어조로 명령했다.

 “무엇을 떠벌리고 다녔는지 말해.”



*



 마계를 다스리기 시작한 왕, 한 명의 네피림. 그리고 현실에 남은, 또 하나의 네피림. 그녀를 지키겠다던 자신의 형제는 어디로 숨었을까. 그는 몇날 며칠을, 캣을 따라다니는 마계의 단면에 몰두했다. 캣은 분명히 단테를 찾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나, 버질은 제 감을 믿었다. 그녀는 단테를 찾는 중이었다. 언제부터 이 둘이 떨어져 있었지? 버질은 악마가 그녀를 죽이려 하며 꺼냈다는 말을 기억했다. 우리의 왕, 위대한 악마 스파다의 아들이자 천사의 아들인 네피림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내리셨다. 그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악마를 죽일까 고심하던 버질은 결국 악마를 돌려보내고 캣을 관찰했다. 네피림은 이 세상에 나와 단테밖에 없지. 너는 그와 떨어져 있네, 캣. 버질은 며칠간 떠돌아다니기만 하는 캣이, 생각보다 단테와 오랜 시간 멀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악마에게서 들은 말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버질은 마계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단테는 늘 현실에 남아 있었다. 캣이 그를 떠나 오랜시간 혼자 있었다면, 단테가 그 동안 현실에 남아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버질은 단테보다 캣을 더욱 잘 알았다. 그 점이 단테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버질은 캣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기가 찬 웃음이 별안간 터졌다.

 너는 잘못된 길을 골랐어, 단테.

 그녀는 단테를 의심하고 있었다. 버질은 더 이상 멀리 떨어져 관망만 할 수 없었다. 그토록 자신을 비웃었던 단테를, 자신이 비웃어줄 차례였다. 단 하나의 길만을 비쳐주는 증오를 따라 걸으며, 버질은 미치지 않았다. 너는 내가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 버질은 제 가슴팍에 남겨진 흉터를 더듬었다. 죽을 때까지도 지워지지 않을 상흔이 손끝에 걸렸다. 나는 너를 죽이고 싶어. 그게 나를 미칠 수 없게 만들어. 나는 여전히…….



*



 버질은 제 등을 끌어안은 채 다시 잠든 단테를 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한쪽 눈을 가릴만큼 길게 자란 단테의 모습은 나이보다 더 어리게 보였다. 버질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어댔다. 얼어붙은 증오라는 수면 아래 꿈틀대던 감정들이 얼음을 깨고 나오려 했다. 버질은 여전히 단테를 놓지 않으며, 제가 쓰던 방을 둘러보았다.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왜 여기에 있었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그의 입안에 맴돌았다. 어지럽게 흩어진 생각들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버질은 다시 단테의 얼굴을 살피고, 천천히 제 등을 끌어안은 팔을 풀어내며, 단테를 눕혔다. 손으로 거의 말라붙은 눈물을 닦아내자 붉게 도드라진 눈매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평안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목에는 벌써 파란 멍이 옅게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건 그가 원한다면 치유될 상처였다. 버질은 느리게 그에 대한 죄책감을 버렸다. 눈을 감으면, 벌어지는 그 날의 흉터. 제 심장을 조각, 조각, 부수고 쪼개어 버린 그 때의 눈빛은 없었다.



 한 번쯤, 그도 빌었던 적이 있었다.
 무너질대로 무너진 모든 것을 제 손에 쥔 채 울부짖은 때가 있었다. 여전히 저를 비웃는 단테를 붙잡아 애원했다. 눈부신 흰색으로 빛나는 날개를 활짝 핀 천사는 갈급히 그를 원하는 버질을 바라보기만 했다. 너는, 날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단테. 나는 너를 믿었어. 두 손은 그의 어깨를 꽉 붙들어매고, 간청이 담긴 목소리는 너무도 뜨거워서 다루기조차 힘든 감정을 그대로 담아 속삭였다. 부서진 심장의 조각들을 쥔 사람은 단테였고, 버질은 집착했다. 배신이라고 칭할 것도 없는 감정에 홀로 상처입은 그는 가만히 저를 바라보는 천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며 울었다.

 “너를 사랑했었어.”

 끝나지 않은 비극에 애달파하며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도 천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세상에는 네가 전부인데, 왜 너는 그걸 몰라. 왜 너는 나를 버렸어. 먹먹하게 잠겨버린 목소리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단테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두 손을 떨군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버질은 무너진 제 모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해서 괴로웠다. 어머니의 말처럼, 제 형제가 언젠간 알아주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열렬히 원했던 것을 제게 같은 크기로 넘겨줄 수 있을거라 믿었다. 단테가 저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버질이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상실이었다. 실망으로 가리기엔 터무니 없이 벅차던 그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썼다. 심장을 찔린 고통보다, 조각나고 망가진 사랑이 주는 지독한 슬픔에 더 아팠다. 얼어붙은 증오 아래 숨겨진 것은 결국 비극적인 외사랑의 잔재와 같은 감정들뿐이었다. 그가 저의 망가진 모습을 못 보길 바랐고, 그건 더욱 무참한 불행을 남겼다. 처참함에 젖어 미쳐가려는 버질을 두고 여전히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너를 사랑해.”

 그러니까 제발 나를 잡아줘. 제발 나를 사랑한다고 해줘. 제발 날 구원해줘. 버질은 애타게 대답을 갈구했다. 버질이 손 안에 쥔 그는, 원하는 답도 없이 두 손 안에서 천천히 미소 지었다. 무너져 내린 그를 두고,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너를 사랑해, 수없이 외쳐도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굴었다. 활짝 폈던 날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그 때보다 새하얗기만 한 그는 이내 손 안에서 부스러졌다. 말했잖아, 너는 내게 중요하지 않아. 환청처럼 들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버질은 그 서늘하고 온기없는 얼굴을 감쌌던 두 손으로 제 무너진 얼굴을 가렸다. 뜨거운 비참함이 손을 적셨다. 그의 심장은 벌어진 채로 남았다.


 그게 전부였다. 버질은 미치지 않기 위해 증오를 택했다. 감당할 수 없이 커져버린 비탄을 잊기 위해 미칠 수 없는 길을 택했다. 때가 오면, 버질은 망설이지 않고 단테를 죽이리라 마음을 먹었다. 단테는 버질이 원하는대로 행동한 적이 없었고, 이번에도 버질은 단테가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흔적에 사로잡혀 평생 괴롭다해도, 벌어진 상처를 메울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선택지가 아니었다. 메울 수 없는 상처를 가리기 위해 버질은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 많은 상황 중에 무력하게 저를 바라보며 우는 단테는 어디에도 기억에 없었다. 감정들이 어지럽게 튀어나왔다. 혼란이 모든 것을 엉키게 했다.

 버질은 도저히 그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증오가 만든 길은 본래 변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변수가 생길 길은 버질이 보통 택하지 않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가 유일하게 예측할 수 없는 건 자신의 동생 뿐이었다. 저를 붙잡고 우는 단테를 보며 버질은 그 또한 처절하게 망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는, 그가 저 때문에 망가지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스스로를 미치게 만들 일이었다. 망가지지 않을 것이란 전제로 부서지길 바랐으나, 그가 미처 손을 대기도 전에 박살나 있었다. 캣도 너를 의심했어. 인간들은 너를 믿지 않아. 버질은 엄지 손가락으로 단테의 눈꼬리를 매만졌다. 여전히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눈매가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버질은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미소를 지었다. 널 바라보는 내 눈에 사랑이 담겨 있을까. 네가 알아차릴 수 있을만큼 넘치고 있을까. 마치 우리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너를…따르게 해줘.’

 여전히 길은 건재했다. 원하고 바랐던 답이 나와도 버질은 대답하지 못했다. 섣불리 그의 바람에 답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생각이 변한 까닭이었다. 그 이전에, 제 유일한 형제가 자신을 따르길 바랐던 이유는 퇴색되지 않고 남았다. 그건 단 하나 뿐인 이유로 존재했다. 세상에 단 둘만 남은 종족은 그 어디에도 원하는 곳이 없었다. 인간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며, 천사도 아닌 그들은 어느 쪽에도 녹아들 수 있었으나, 사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는 못했다. 마계와 천계, 림보와 연옥. 그들 모두를 잇는 인간의 세계. 결국 겉을 나돌게 되는 두 명의 네피림을 위한 낙원은 없었다.

 “너와 함께 하고 싶었어.”

 진심으로 물어보기를 바랐던 질문의 대답을 털어놓으며, 버질은 아주 낮게 속삭였다. 눈꼬리를 쓰다듬던 손을 천천히 입가로 옮겨 살짝 벌어진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내가 보는 인간은, 깨지기 쉽고 보호가 필요했어. 그래서 나는 그들을 보호하는 대신, 우리가 살 수 있는 세상을 가지고 싶었어. 우리만 남을 수 있는 세상이 필요했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물었더라면 금방이라도 쏟아질, 답들이 모두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다 상관없었다. 단 둘만 남은 세상에서, 구원은 서로의 것이었다.
 버질은 그 입술에 제 입술을 맞추었다. 나는 단지 나를 구해줄 사람이 필요했어. 그 말을 들으며 버질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 말을 내뱉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었다. 으스러지고, 산산이 깨진 심장의 조각이 외쳐대던, 구원을 바라는 외침. 그러나 버질은 다시 한 번 그를 떠났다.

 나는 너를 증오했었으니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 돌아와야 했다. 결국 서로의 구원자를 향해 걸린 시간만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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